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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가위에 눌리는 이유와 내가 미신을 믿게 된 이유

by 박빨간날 2023. 1. 8.

이미지 출처 : Unsplash

저에게는 너무나도 어릴 적부터 저를 괴롭혀왔던 미지의 존재가 있습니다.

그게 무엇이냐면, 초등학생 때부터 시작된 가위눌림입니다.

가위눌림은 지금도 무서운데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처음 가위에 눌렸을 때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저는 느닷없이 두 마리의 하얀 토끼 얼굴을 상상했는데,

그중 왼쪽의 토끼 얼굴이 갑자기 검게 물들기 시작하더니 수면마비가 오게 된 겁니다.

몸을 움직일 수 없었고 숨이 쉬어지지 않는 듯했습니다.

세차고 미적지근한 바람이 내 몸의 아래위를 지나며 나를 진공에 띄우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눈은 뜰 수 있었지만 무서워서 꼭 감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여러 소리들이 동시에 들려왔습니다.

사람의 목소리도 섞여 있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소리들 중에서 랜덤한 수십 개를 저에게 들려주는 듯했습니다.

 

20초 정도 지속되었던 것 같아요.

저는 침대 위로 돌아왔고 숨을 헐떡였습니다.

그리고 10년 안팎의 인생에서 처음 겪는 기괴한 경험이 저를 공포로 둘러쌌습니다.

바로 엄마에게 달려가서 그 일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토끼 얼굴이 검어지는 상상을 했더니 그런 걸 겪게 되었다고.

엄마는 왜 그런 상상을 하느냐고 물으시더라고요.

그때 저는 깨달았습니다. 상상이 아니라 꿈이었던 거죠.

마치 뇌가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누군가가 내 상상을 대신하는 듯한... 기묘한 꿈을 꾼 것이었어요.

어쩌면 그 순간부터 가위눌림이 시작된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제가 처음 겪은 가위눌림은 그런 것이었습니다.

특이하게도 그날 이후로는 주기적으로 가위에 눌렸습니다.

지금은 가위눌림 경력으로 치면 시니어급, 베테랑급입니다. 하도 많이 눌려서요.

하룻밤에 다섯 번을 연속해서 가위에 눌린 적도 있습니다.

여전히 두렵지만 동시에 아주 익숙한 보통의 경험이 되었지요.

 

가위에 눌리는 이유

왜 가위에 눌릴까요?

끝나지 않는 가위눌림 같은 일상에서 벗어나 잠이라도 편하게 자려하는데

왜 잠이라도 편하게 못 자게 하는 걸까요...? 

흔히 가위눌림은 렘수면 중에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죠.

그리고 그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직도요.

 

가위눌림 도중에는 귀신같은 것, 환각을 보는 경우가 흔한데요.

정말 귀신 때문일지, 영감을 가지고 있는 게 그 원인일지 너무나도 궁금했습니다.

수면마비 중 귀신을 보는 이유에 대해서 요즘 핫한 과학 커뮤니케이터 궤도 님께서는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수면마비라는 위험한 상황이 닥쳤기 때문에 뇌가 행하는 응급처치 같은 것이라고 합니다.

가장 낯설고 무서운 존재를 등장시켜 자극을 줌으로써

가위눌린 사람을 강제로 깨어나게 하는 겁니다.

참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는 설명이죠?

궤도님과 워딩이 같지는 않고, 제가 이해한 대로 표현을 바꿔서 설명드린 것입니다.

 

물론 이 설명만으로 모든 의문이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수면마비의 원인이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만큼, 굉장히 복잡한 무언가가 얽혀 있는 것 같습니다.

혹은, 정말 귀신 때문일지도?

 

내가 미신을 믿게 된 이유

제가 가위를 진짜 많이 눌린다고 했죠? 하루는 다섯 번도 눌린 적이 있다고 했잖아요. 그날의 이야기입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는 가위를 너무너무 자주 눌려서 자는 게 두렵기까지 했습니다.

새벽 4시까지 잠을 못 자기도 하고, 일부러 잠을 안 잔 적도 있습니다.😱

가위를 잘 눌리는 사람들은 흔히 피로가 극에 달하는 고등학교 3학년 때 피크를 겪게 되는데, 저도 그중 하나였어요.

다크서클이 되게 심한데, 그때 아마 이렇게 됐을 거예요.


이게 왜 그렇게 무섭냐면, 그 상황 자체도 무서운데 가위에 눌릴 때 심장이 너무 아팠습니다.

가위눌림이 시작되면 온갖 환청과 함께 점점 심장이 조여 오는 느낌이 들다가,

아 이제 죽는구나 싶을 때 딱 깨는 것을 반복했습니다. 거의 항상 그런 식이었습니다.  
진짜 죽을까 봐 무서운 거예요.


제가 매일 잠을 제대로 못 자고 너무 힘들어하니까 엄마가 제 침대 옆에 달마도를 두셨습니다.ㅋㅋㅋ
그런데 달마도를 둬도 계속 가위에 눌리는 거예요. 뭐 당연한 거죠. 그게 뭐라고. 뻔한 미신이잖아요.
그래서 엄마가 이번에는 식칼을 제 침대 밑에 두셨습니다. 집에서 쓰던 식칼을 하나 제 침대 밑에 두고 자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진짜 이상하게도, 신기하게도 딱 그날부터 가위에 안 눌리는 거예요.😶
물론 플라시보 같은 경우일 수도 있고, 우연일 수도 있습니다.

제가 미신을 믿진 않았지만 나도 모르게 어딘가 이제 괜찮을 거라는 믿음이 생겼을 수도 있어요.
그러나 말 그대로 귀신같이 딱 그날부터 가위에 안 눌리고, 무려 한 달을 편하게 보냈습니다.

그 한 달은 누구보다 잘 잤습니다.


그렇게 잘 지내다가 어느 날, 일이 생겼습니다.

갑자기 가위를 밤동안 다섯 번을 연속으로 눌린 거예요.

숨을 쉴 수 없고 심장을 죄는 고통에서 벗어나 숨을 헐떡였습니다.

그러다 다시 잠에 들면 똑같은 수면 마비가 반복되었습니다. 사람을 미치게 합니다.
이 날은 아이러니하게도 다섯 번 눌린 후로는 푹 잤습니다. 왜냐면 마지막에는 너무 힘들어서 기절을 했거든요.
너무 힘들어서 가위눌림이 끝나고 잠깐 일어났다가 바로 쓰러져버린 거예요.

제가 체력이 좋았으면 다섯 번에서 그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아침이 되었고, 비몽사몽 한 와중 떠올린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제가 정말 믿지는 않았지만, 혹시나 하고 침대 밑을 봤는데 식칼이 없는 겁니다.
침대 아래가 텅 빈 것을 보고 너무 소름이 돋아서 바로 엄마한테 갔죠.😂

가위에 너무 심하게 눌려서 침대 밑을 봤더니 칼이 없어졌다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엄마가 뭐라고 하시냐면, "이제 잘 잔다고 해서 내가 어제 치워부렀는디?" 


그러니까 한 달 동안 이미 칼이 없는 상태에서 잘 자고 있던 것도 아니고,
칼을 치우자마자 마치 보복을 당하듯 가위에 그렇게 심하게 눌린 거죠.
이 사건을 겪고는 어쩔 수 없이... 미신을 조금 믿게 되었습니다.😐

 

가위에 한 번도 눌려보지 않은 사람들은 어떤 느낌인지 굉장히 궁금해합니다.

저는 궁금해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단지 환청과 환각을 겪고, 무섭고 끝나는 거라면 별 거 아니에요.

수면마비는 스릴러 속 주인공이 아닌 제가 죽음의 공포를 느끼게 되는 유일한 순간입니다.

당연히 그 정도로 죽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는데. 그 믿음을 깨버리는 고통을 느끼는 순간입니다.

가위에 한 번도 눌려보지 않았다는 건, 저 같은 사람보다는 아주 조금이라도 더 행복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베테랑이다 보니 가위눌림 썰은 굉장히 많은데요.

고등학생 때 학교에서 엎드려 잠을 자던 중 가위에 눌렸고, 바로 오른쪽에서 여자 비명소리가 들려 화들짝 깬 적도 있습니다. 

오른쪽에는 친구가 저처럼 엎드려 자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선명한 소리였기에 깜빡 속았어요. 깔끔하고 무서운 경험이었습니다.

뭐 이런 경우들이... 다수 있네요. 최근에는 기껏해야 한 달에 한 번 정도 눌리는 것 같습니다.


또다시 한 해, 2022년이 정신없이 가버리고

계묘년 2023년이 찾아왔습니다.🐰🐰

토끼가 검게 물드는 꿈에서부터 시작된 저의 수백 번의 가위눌림은

검은 토끼의 해인 올해를 위한 액땜이었다고 생각하렵니다.

그간의 고통만큼 새로운 것을 깨닫고 얻게 되는 해가 되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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